노인(老人)의 방법.
노년을 노년답게 보내는 방법들이 소개되곤 한다.
이러한 방법들은 편안함과 여유로 포장되지만 자의든 타의든 격리와 고독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통점도 동시에 잔재 한다.
새롭게 투입되는 젊은이들과 함께, 사회는 마지막 여정들도 끊임없이 밖으로 밀려내는 흐름으로 흘러간다.
이러한 흐름은 마치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모두 같은 지역이라는 속해버려, 앞섬과 뒤따름에 구분이 없는 노인의 영역에 놓이게 된다.
그냥 노인으로 불리는 사람일 뿐이다.
노인은 어찌해야 하는가.
조만간 젊은이와 노인의 평등을 논하는 때가 올 수도 있다.
젊은이에게 젊은이 다움을 강요했듯이 사회는 노인에게 노인다움의 시선과 빈축을 함께 가진다.
당연한 시선으로 이들에게 깊은 생각과 사욕을 버리고 성현의 단계를 넘나드는 도의 성찰을 강요 한다.
물건에 대한 욕심, 혹은 이성에 대한 관심마저 노인다움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디지털 장비 사용의 확대와 공급의 풍요 속에 급변하는 소비지향 사회에서 노인은 현대판 천민계급 치부되기도 한다.
그저 나이든 젊은이라 울부짖어도 행여 동정의 눈길은 있을지 언 정 계급의 딱지를 때어버릴 순 없다.
삶의 언제부터인가 막연한 두려움으로 생각된 요양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과정으로 자리잡는다.
한 때 권력의 가지고 수많은 결정들과 주도권을 가졌지만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쪼그라들어 감을 느낀다.
반항은 독선과 고집으로 치부되고, 싫든 좋든 격리와 고독만이 그나마 나를 지키고 빈축을 면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소리 내는 것보다는 침묵을, 나서기 보다는 무조건 적인 이해와 도덕성을 묵시적으로 요구받는다.
2022년,
고속성장과 베이비붐 세대의 다양한 삶들이 이제 톨케이트를 지나고 다가선다.
고령화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겪어보지 못한 위기가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톨케이트를 이미 통과한 자들은 이미 선택의 기회마저 쪼그라들었다.
방법도 없다.
도움이 될지, 짐이 될 지를 판단할 젊은이의 시각은 항상 아직 좁고 여유가 없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사실과 무게일 뿐이다.
삶의 마지막의 10년 전후을 어찌해야 할 지 망각할 뿐이다.
하지만 어느새 노인이 되어 이 침대에 누워있게 된다.
방법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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